" 재세례파와 급진적 종교개혁 "
◈ 재세례파의 기원
- 재세례파와 급진적 종교개혁의 구별 급진적 종교개혁은 여러 가지 기원이 있지만 재세례파는 하난의 기원이 있다.
ㅊ취리히에서 츠빙글리와 같이 개혁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콘드라 그레벨(Conrad Grebel), 만쯔(Felix Manz), 후프 마이어(Balthasar Hubmeier), 이러한 사람들이 츠빙글리의 온건한 개혁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서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특별히 유아 세례의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는데 처음에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서 유아세례를 지지하였다. 1519년 1월 18일 주 정부에서 1525년 1월 18일 주정부에서는 모든 아동들에게 유아세례를 행하라고 한다. 그러자 1525년 1월 21일 만쯔(Felix Manz)라는 사람의 집에서 블라우록(George Blaurock)가 '내가 어렸을 때 받은 세례는 세례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였다. '신앙과 지식에 근거한 참된 크리스챤 세례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래서 콘드라 그레벨(Conrad Grebel)이 블라우록(Blaurock)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다. 그다음에 블라우록(Blaurock)이 거기 참석한 15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여기에 참석한 세 사람은 모두 금방 죽게 된다. 그레벨은 1526년 흑사병으로 죽고, 만쯔는 익사형에 처해져서 죽었고, 브라우록은 1529년에 화형 당하였다. 결국 재세레파는 시작되자마자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독창적인 사상가들이 사상을 전개하지 못했다. 박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파급효과가 컸을 것이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갔다.
◈ 재세례파
- 1525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동하여 지금까지 개신교 안에서 독자적이 길을 걷고 있다.
- 급진적으로 변혁하고자 했지만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종교개혁
-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 침례교인 : 타우퍼
재침례 교인 : 비더타우퍼
- 세례는 신앙고백에 뒤따르는 의식이 때문에 유아세례는 세례가 아니다.
- 교회와 국가의 분리 주장
- 재세례파보다는 형제들이라고 칭함.
▣ 콘라드 그레벨 (1498?- 1526)
- 스위스의 종교개혁자이자 재세례파의 창시자로 1525년 교회를 설립하였다. 근대사상 처음으로 자각적 신앙을 근거로 하는 성인(成人) 세례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그는 유아세례를 부정하였다.
- 바젤, 빈, 파리 대학에서 주로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뒤, 1520년 취리히로 돌아왔으며, 츠빙글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524년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운 교회를 설립하고자 시도했는데, 이 문제로 츠빙글리와는 결별하였다.
- 1525년 교회를 설립하고, 근대사상 처음으로 지각적 신앙을 근거로 하는 성인(成人) 세례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그는 유아(幼兒) 세례를 부정하였다. 1526년 페스트로 사망하였는데, 1569통의 서한 외에는 저작이 없다.
▣ 토마스 뮌처(1489?-1525년 5월 27일)
- 독일의 신학자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1520년 츠비카우에 부임하였다. 처음에는 마틴 루터와 협력하였으나, 후에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을 비판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없는 사회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고 설교하다 추방당하였다 [루터와 결별]. 1524년 뮐하우젠에서 비밀결사대를 조직,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고자 농민들을 이끌고 독일 농민 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였다. 뮌처는 성서의 권위보다 성령의 내적 빛이 우월함을 청명한 대표적 인물이다. 살았을 때는 물론 죽어서까지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근대 유럽 종교사와 사회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를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의 선구자로 본다.
▣ 메노 시몬스(1496-1561년 1월 31일)
- 네덜란드 비트 마르 숨 1496년 출생하였다. 급진 종교 개혁가로 원래 프리스랜드 지역의 1524년 로마 가톨릭 사제였다. 12년 동안 사제로 지냈다. 후에 재세례파의 교리의 매혹되어 화채설과 유아세례 반대, 평화주의 유토피아적인 신앙 공동체 주장, 1540년 기본서를 펴냄. 네덜란드 재세례파의 온건파 초기 지도자로 그의 추종자들이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를 세웠다.
- 메노나이트-
- 메노파(Mennonites) 혹은 메노나이트는 기독교에서, 종교개혁 시기에 등장한 개신교 교단으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재세례파의 일파다. 메노파란 메노 시몬스의 신학을 따를 자들이라는 뜻이다.
▣ 야콥 후터(1500년?-1536년 2월 25일)
- 급진 종교개혁가이다.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재세례파 지도자이자 후터 파의 지도자이다. 후터는 현재의 이탈리아 볼차노 현(남티롤)에서 모자 장인으로 태어났다. 1520년 무렵까지 근본적인 종교개혁 지도자로 활동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타락하고 영적인 양식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남녀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멀리하고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세례를 원했지만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였다.
- 1529년 합스부르크가 의 탄압을 피해 피신한 재세례파 신자들이 종교적 관용을 베풀고 있던 마라바에서 후터의 지도하에 모였다. 재세례파 공동체는 비폭력주의, 성인 시자에 대한 세례를 실천했다. 후터는 모라바와 티롤 지방에서 설교하는 세례를 지도했다. 1535년 11월 30일 브란졸(Branzoll) 요새에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1536년 2월 25일 산 채로 화형 당했다. 후터의 글은 그가 박해를 받았을 때에 자신의 형제자매를 상대로 쓴 8통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 재세례파의 신조
* 마태복음 5장-7장을 출발점으로 산상수훈이 시작.
* 재세례파 신조 BASIN(대야)- 경손과 섬김을 상징.
- B : 모든 신자들의 형제 관계 주장
- A : 신자 세례 주장
- S : 교회와 국가의 분리 주장
- I :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음
- N : 비폭력적 저항
* 1527년 2월 24일 스위스 슐라이트하임에서 신앙고백 작성
* 1632년 도르트레히트 신앙고백
◈ 슐라이드하임 신조
* 1항 : 신자 세례를 옹호
* 2항 : 파문과 출교
* 3항 : 성찬은 신자들만을 위한 의식
* 4항 :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 5항 : 교회의 목자
* 6항 : 칼의 사용
* 7항 : 맹세
▣ 암만파 혹은 아미시
- 암만은 1644년경 출생, 1740년경 사망
-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의 중부에는 개신교 재세례파 계통의 아미시(Amish)라고 불리는 종교적/문화적 공동체가 들어서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1693년 스위스와 알자스에서 야콥 아만이 전근대 유럽의 종교 박해를 피해 신세계로 이끌고 온 재세례파 계열 신도들의 후손들이다.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아만파(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에도 소수가 있다. 규모와 성격이 다르지만 한국의 청학동 마을, 이스라엘의 하레디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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