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벨론에 사로잡혀 와 살던 옛 유다 왕국의 상류층들에게 바사 왕 고레스가 주전 538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을 때(에스라 1장 1-4절), 이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은 사로잡혀 온 유다인들 가운데 일부뿐이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에도 크고 작은 무리들이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로잡혀 와 흩어져 살던 여러 낯선 나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에스더>에서는 이런 유다인들이 외국에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고수 했기 때문에 어디서든 남의 눈에 띄었고 주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그저 감정적으로 이들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이들을 뿌리 뽑으려고 이런 풍토에서 유다인들 가운데서는 복수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이는 살아남으려는 의지 때문에 강해졌다.
- 인간적으로 따져본다면, 적개심에 찬 주변 환경에 둘러싸인 이 작은 민족에게는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었는데, 이것이 이미 그 당시 유다인들의 상황이었고 그 뒤로도 이들의 전 역사가 그러했다. 이런 상항에 부딪쳐서 <에스라>는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 뒤에서 자기 계획을 -자동적으로가 아니라, 자기에게 충성스런 사람들을 통해서(4장 14절)-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용기를 주는 것이 <에스라>가 씌어진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달리는 유다인들에게 사랑받는 부림절이 어떻게 제정되었는지를 <에스더>에서 알 수 있다.
- 저자는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가 유다인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고 또 바사 제국과 그 풍속 및 관습을 아주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다 및 예루살렘과 거기 상황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는 점은 <에스더>에서 알 수 있다.
- 그런데도 <에스더>는 또한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초기 유대교 지도자들은 <에스더>를 정경에 넣을 것인지를 두고 오랬동안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부림절이 모세의 율법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쿰란 동굴에서는 에스더 두루마리는커녕 <에스더>에 대한 암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약 성경의 어디에서도 <에스더>를 인용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에스더>는 별 쓸모가 없어서, 이들은 <에스더>를 주석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에스더>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에스더>에 나오는 역사 내용도 성경 밖의 여러 자료와 맞지 않는 수가 흔하다. 그러하여 <에스더>의 역사적 신빙성과 신학적 의미에 대한 주석가들의 의견이 아주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목적으로 <에스더>를 썼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관주 · 해설>> 中-
-저자 : 유대 전승에 의하면 모르드개가 본서를 기록했다고 전하지만 본서 마지막부분(1-장2,3절)은 모르드개의 일생이 이미 끝난 후에 본서가 기록된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모르드개 당시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했던 한 유대인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 기록 연대 : 본서의 마지막 부분은 이미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 시대가 끝난 이후(B.C. 465년 이후)라는 생각을 각제 한다. 따라서, 모르드개와 아하수에로가 사망한 뒤인 B.C.465년 이후에 본서가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 핵심 주제 : 1.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 2. 담대한 신앙
- 내용 : 와디스의 폐위 / 왕후가 된 에스더 / 하만의 득세와 유대인 살해 계획 /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 / 왕과 하만을 초대한 에스더 / 모르드개의 영예와 하만의 굴욕 / 하만 처형 / 유대인의 승리 / 부림절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