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열왕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왕정기' 역사, 곧 다윗이 죽은 위부터 이스라엘 및 유다 왕국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다룬다. 이는 <여호수아>에서 <열왕기하>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역사서의 끝부분을 이룬다.
-<열왕기상>은 슬기로 이름난 솔로몬 임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1-18장). 솔로몬이 다윗 왕좌에 오른 사건을 알려주는 1-2장은 다윗 왕위의 계승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 연관성 있게 서술한 역사 작품으로 신명기 역사서 안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사무엘하 19-20장 과 열왕기상 1-2장, <사무엘하> '안내'를 보라).
-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는 성격이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타고난 전술가인 다윗과는 달리 솔로몬은 왕국의 내부 행정체제를 갖추는데 골몰하였고 외교와 경제 관계를 통하여 왕국의 존립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스라엘에 오랜 평화기를 선사했던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 문화와 경제는 전성기에 이른다. 다윗의 번영(<사무엘상> '안내'를 보라)과 다윗 왕위의 계승을 다루는 역사 작품은 솔로몬 왕궁에서 생겨난 듯하다. 옛 중동의 왕궁에서 보존해 왔던 지혜의 가르침과 지혜 시(잠언)가 이제 예루살렘에도 발붙이게 되었다.
- 솔로몬 같은 통치자에게는 유브라데에서 아카바만까지 이르는 다윗의 대 왕국을 한데 결속시키기가 어려웠을 것이 틀림없다. 왕국의 가장자리 여기저기에서 성공적인 독립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테면 남동쪽의 에돔 사람들과 북쪽의 아람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했다(11장 14-25절). 무엇보다도 북쪽 지파들은 강제 부역에 동원시킨 슬기롭지 못한 내부 정책(11장 28절) 때문에 해묵은 남북 대립 관계가 악화되어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된다.
- 솔로몬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을 중앙 성소 곧 성전(6장 과 8장)을 갖춘 왕도로 발전시킨 것이다. 언약궤를 성전 안에 들여다 놓음으로써 이 성소는 하나님 백성 한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시온 산 위에 계시는 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한, 앞으로도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찬양 시(시편 9편, 96-99편 참조)로써 하나님 백성의 진정한 임금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그때부터 오늘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및 나중에 생겨난 유대교의 중심점이 된다.
- 신명기 역사서에서는 솔로몬 시대를 황금기, 곧 이스라엘이 존경받는 나라로서 평화롭고 번영하는 가운데 살고 임금의 부귀영화가 끝없이 펼쳐지던(4장 21-28절, 10장 14-29절) 시기로 묘사하고 있다. 왕국이 솔로몬의 후계자인 르호보암 때에 크기가 다른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면, 여기에는 -겉보기로- 분명히 정치적인 까닭이 있었다. 북쪽의 열 지파가 다윗 왕조를 섬기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기들의 자유로운 권리가 제약받고 자기들이 부당하게 억압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역사서의 판단에 따르면 왕국의 분열은 솔로몬이 노년에 이방인 아내들의 유혹에 빠져 우상을 숭배한 데에 따른 형벌이다(11장 1-13절). 왕국이 갈라진 뒤로는 두 나라의 역사를 따로 나누면서도 서로 관련시켜 다루는데, 두 나라의 임금들도 이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늘 충성하는지 또 오로지 그만을 섬기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받는다.
- 특히 새로 세워진 북왕국의 왕정은 이척도를 견뎌낼 수가 없었다. 첫 임금 여로보암 1세(주전 926-907년)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맞설 만한 매력적인 것을 만들려고 했다. 곧 북왕국의 남쪽 경계에 있는 벧엘과 북쪽 경계에 있는 단, 두 곳에 왕국 성소를 세워 이들을 예루살렘의 '경쟁 상대'로 삼은 것이다. 이 두 성소에서는 황금 수소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겼다(12장 20-32절). 이러한 탈선을 가리켜 '여로보암의 죄'라 하는데, 북왕국이 전역사를 통해 이 죄를 저지르다가 마침내는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명기 역사서의 판단이다(열왕기하 17장)
-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진다. 곧 여로보암 이후 북 이스라엘에서는 바알 종교의식을 아주 공개적으로 장려한 것이다. 왕위를 둘러싼 혼란이 거듭된 끝에 오므리 임금 (주전 882-871년)은 비교적 오래 계속되는 세습 왕위 제도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오므리 왕조, 16장 21-28절).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주전 871-852년)은 바알 숭배를 여호와 숭배와 동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북왕국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려고 한다. 이 목표에 맞추어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세운다(16장 29-34절). 게다가 페니키아 공주였다가 아합의 아내가 된 이세벨이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바알을 숭배하는 무리에게 무게를 실어준다.
-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 종교 의식과 그것이 공동생활에 끼치는 영향에 맞서 열정적으로 싸워 일시적으로 성공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것이 지속되지는 못했다(17-19장). 예언자 나단이 다윗 대왕에게 그랬듯이(사무엘하 12장), 엘리야도 아합 임금이 사욕을 채우느라 비양심적으로 왕권을 남용한 것을 꾸짖고 이스라엘에서는 임금에게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열왕기상 21장). 위대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엘리야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절망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에게 새 힘을 얻어서(19장) <열왕기상>의 끝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열왕기상>은 내용상으로 전혀 끊어짐이 없이 <열왕기하>로 이어진다.
-<< 관주 · 해설>> 中-
- 저자 : 유대 전승에 의하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서를 기록했다고 한다. 예레미야서와 열왕기서는 서로 유사한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당시 널리 알려졌던 예레미야의 이름이 열왕기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승은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기록 연대 : 본서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다 왕 여호야긴의 석방 사건에 관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그 후에 있었던 포로 귀환에 관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만일 저자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았다면 반드시 언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바벨론 포로 시대가 한참 진행 중이던 B.C.561-538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 핵심 주제 : 1. 언약과 왕권 2. 하나님의 선지자
- 내용 : 솔로몬의 통치 / 왕국 분열 초기 / 엘리야의 사역 / 아합의 통치 /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통치